해산첩이 담고 있는 금강산의 전경 금강전도

  1797년 가을, 조선 후기의 학자 수영(1743-1831)이 금강산을 탐방했다. 그는 유탄(an ()으로 금강산의 풍경을 스케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2년 뒤인 1799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에 걸쳐 가을 금강산[해산첩]을 완성했다. 지리학자 가문의 후손인 수영수는 남다른 관찰력과 독자적인 원근법, 사물의 배열 방법, 독특한 필법 등이 특징인 금강산을 직접 그린 그림을 남겼다.


가을이 오면 단풍의 계절인 현대인들은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풍경을 기념해 사진을 찍어 블로그 등 개인 웹사이트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한다. 사진을 보면 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개인의 취향, 흥미, 시각적 경험에 따라 촬영 대상이 다르고, 같은 피사체를 찍어도 카메라 종류, 촬영 각도, 사진작가의 실력에 따라 각기 다른 사진이 제작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가을 여행의 추억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단풍이 아름다워 '풍악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금강산을 찾은 작가들이 여행문학을 남겼고, 정선·김홍도·심심정 등 화가들은 단풍으로 물든 금강산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지우만큼 찾기 어렵다.애수영의 [해산첩]. 옅은 붉은 색을 사용하여 금강산의 가을을 그린 [해산첩]은 해금강 바다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이라는 그림, 내금강 9경, 외금강 5점의 그림에 어울린다. 4개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강산의 여정과 풍경을 그린 정수영의 글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점도 다른 금강산 그림과 다르다.


수영이 [해산첩]에 기록한 첫 번째 그림 <금강전도>는 익숙한 정선식 금강전도와는 많이 달라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정수영이 역삼각형의 공간에 금강산 1만2천 봉우리를 눈앞에 뒀다. 화면 중앙 하단에 사람이 앉는 꼭짓점이 있는 역삼각형 공간은 그 지점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 경험할 수 있는 최대 시야 범위가 될 것이다. 이 그림의 앞면에 기록된 동유기(東ugi記)에 따르면 정수영은 "새벽에 내린 비가 재를 넘겼다. 잿더미에 오르니 구름이 일대에 퍼져 하늘 끝까지 닿아 비로봉과 향로봉 중 어느 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산비탈과 산등성이 바닥뿐입니다. 솔직히 흐리지 않았어도 아무도 제대로 가리키지 않아서 구분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의 시각적 경험을 반영하듯 그림 속 봉우리들은 개별적인 특징이 없고, 먼 곳의 봉우리들은 길고 낮은 구름으로 대담하게 덮여 있다. 그는 그가 본 대로 통치자의 봉우리 끝을 잘라내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반면, 전면 좌우 공간은 편안하게 곡선을 이룬 구름안개로 마감되어 전체적으로 부채꼴을 이루고 있다. 그의 글에는 좌우 구름안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개별적인 시각적 경험을 전달하면서 화보적 구성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산봉우리로 가득 차 있어 상당히 답답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시점의 변화와 산과 봉우리의 크기, 색채 등을 통해 거리와 공간의 감각을 살렸다(그림 2). 화가가 있는 가까운 장면은 위쪽을 내려다보는 지점에서 보이는 반면 가운데 장면은 화가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지점에서 포착되고, 먼 곳은 화가가 올려다보는 풍경이다. 또한 가까운 들판의 산과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들이 비교적 크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 사이의 처리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알록달록한 단풍의 자태를 표현한 붉은 색조와 피클링에 바르는 녹색 색조의 밀도도 뿌리가 가장 어둡고 거리가 멀수록 얇아진다.


「금강전도」에는 수영이 앉아 있는 '재'가 어느 쪽을 지나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 시대 금강산의 전형적인 여정의 '단발령'으로 추정된다. 단발령에서 바라본 단발령과 금강산 풍경을 그린 그림은 겸재 정선(1676~1759)의 <단발령 망금강산도> 이후 대각선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안개에 싸인 백암 봉우리의 배치 방법(그림 3)을 따르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가벼운 물체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화보적 재구성이 돋보인다. 다만 정수영은 당시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장면을 자신이 인지하는 방식으로 그려내려 했다. 이는 정수영의 가풍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지도 제작에도 참여했던 정인지(鄭仁),, 1396~1478)의 12대손이다.


그는 '천일대'(天日臺)와 '헐성루'(<그림 4>)에서 보듯 산봉우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내금강의 풍경을 과거 유례가 없는 삼면을 활용해 전파했다. 가운데 면 하부에 그려진 천일대는 내강 정양사 동쪽에 위치해 헐성루와 천일대를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내금강의 장관을 구경하는 정수영의 대표적인 전망대이다. 연두색은 높은 침엽수림이 심어져 있는 천일 일대에 그려지는데, 산맥에 발린 붉은 색조와 대조를 이루며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풍경을 그리는 전통은 조선 중기부터 확인되고 있으며, 정선도[정양사도]를 그렸다(그림 6). 사진 속 천일대에서는 선비들이 내금강의 장관을 감탄하고 있다. 정양사의 헐성루, 천일대, 금강대, 산봉우리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려졌다. 정형화된 공간 구성이지만 정선이 실제로 본 풍경이 아니라 선택과 누락을 통해 회화적 변신을 거친 공간이다. 반면 정수영의 그림은 천일대가 봉우리와 직접 맞닿아 있고, 봉우리들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어 거리감이나 공간의 깊이를 보존할 수 없었다. 정수영이 천일대에서 본 모든 것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그는 눈높이가 수평이기 때문에 물건들을 일렬로 배열합니다. 그가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미적 재구성보다는 개인의 시각적 경험을 기록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내금강의 뾰족한 봉우리가 수평으로 늘어선 <천일대망 금강산>을 보면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어지러웠는데, 잠시 난간(헐성루)에 기대어 마음을 가라앉혔다"며 그가 겪었을 시각적 위협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수많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서 있어 숨이 멎을 지경이지만 산줄기에 붉은 단풍잎이 수놓아 신선함과 시각적 다양성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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