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넘어서는 홀로코스트와 제 3세계의 역사

 식민지 집단 학살과 홀로코스트는 얼마나 비슷한가?

아우슈비츠 평화화해를 위한 연구소(AIPR)는 2007년 교육과 정책 개발을 통해 집단 학살에 맞서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뉴욕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 부에노스아이레스, 캄팔라에 사무소가 있으며 설립 배경은 2000년 1월 스톡홀름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각국 정상 23명과 부총리 14명, 외교부 장관 등이 46개국을 대표해 서명한 선언문은 홀로코스트 기억을 국경을 초월한 시민의 미덕으로 못 박았다. 그는 또한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준의 학교에서 홀로코스트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국가의 전유물적 기억을 넘어 전 세계 시민사회의 규범적 기억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 선언은 홀로코스트의 고유성 논지를 훼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홀로코스트가 다른 집단 학살과 비교할 수 없다는 독특한 논지는 결국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계적인 관점으로의 이해를 방해할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신성화되고 특권화되면 국경을 초월한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유대인만이 홀로코스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닫힌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AIPR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간다 캄팔라에도 사무소를 차린 것은 세계 기억공간에서 홀로코스트와 제3세계 집단학살이 연대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실제로 연구소는 매년 8월 9일 세계 원주민의 날에 특별 성명을 내고 세미나를 개최해 왔다. 2018년 8월 9일에 개최된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초국가적 이민과 원주민의 이동이었다.

집단학살 연구원인 댄 스톤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50건 이상의 집단학살이 행해졌다. 전후 대부분의 집단학살에서 국가 권력은 개발을 명분으로 원주민 소수 부족에 대한 폭력을 행사했다.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대학살이 가장 최근의 사례이다. 이들은 문명의 이면에서 발생한 '진보의 희생자들'이었다.

일부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은 원주민 집단학살이 반유대주의에 의해 촉발된 나치 홀로코스트와는 '실용적' 목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주장했다. 로마에서 벌어진 나치 학살(집시)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르완다에서의 대량학살이나 구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인종청소가 홀로코스트와 달리 원시 부족 갈등의 표현이라는 시각도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다만 제3세계 관점에서 홀로코스트는 식민주의가 지리적 발견 이후 지난 500여년간 전 세계 토착민들을 상대로 벌인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의 양상은 원주민이 아닌 유럽인을 표적으로 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저하게 유사하다. 또한 많은 파시스트/나치주의 연구자들은 유럽 식민주의의 역사가 홀로코스트의 선례라는 것에 동의한다.

로버트 팩스턴(Robert Paxton)은 남북전쟁 직후 남부에서 결성된 KKK 갱단을 '파시즘의 주목할 만한 예고편'으로 보고, 도시를 방문한 사이먼 비젠탈(Simon Wiesenthal)과 스벤 린드퀴스트(Sven Lindquist)는 반유대주의 전통이 회의 후에야 홀로코스트로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집단 학살의 식민주의적 전통은 모두 제3세계의 관점을 드러냅니다.

68세대의 반전운동이 가져온 변화
한편, 홀로코스트에 대한 제3세계의 시각은 또한 다른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희생자들에게 다른 종류의 연대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서로 다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이 세계 기억 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경험을 참고자료로 삼아 비극적 과거에 대한 더 깊고 풍부한 비판적 기억을 만들어내며 굳어졌다. 나치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 집단학살의 기억이 서로를 지칭하면서 비판의 선견지명을 날카롭게 한 선례는 1960년대 초 프랑스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필자가 특정 시점을 꼽자면 1961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1961년은 예루살렘 아이히만 재판이 열린 해이기도 하지만, 10월 17일 파리 거리에서 반식민지 시위에 참여한 알제리 이민자들이 학살당한 해이기도 하다.

같은 해 파리에서 300여명에 달하는 알제리 시위대가 학살당한 사건에서 샤를로트 델보는 식민주의의 폭력과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편지로 엮은 목격자 문헌인 레 벨레스 레트레(Les Belles Letres)를 출간했다. 동시대의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도 레 드 게토에서 바르샤바 게토 생존자들과 알제리 노동자들을 병치시켜 연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델보나 두라스의 글에서 반식민지 저항의 공간이 된 파리와 제3세계의 공간이 된 파리가 식민지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하나로 뭉치는 무대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20세기 파리는 동아시아의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호치민 등 반제국주의 공산주의 운동가들과 아프리카의 네그리튜드,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프란츠 파논 등 범아프리카주의자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은 제임스 볼드윈과 같은 미국의 급진적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식인들과 같은 제3세계 혁명가들의 임대 주택이기도 했다.

68세대의 기원을 식민주의 폭력과 이에 대한 정치적 저항에서 찾는 추세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경을 넘나드는 비판적 기억으로 문을 연 이들은 베트남의 세계적인 반식민지 투쟁과 반전 운동에 의해 훈련받은 세대였다. 서유럽뿐 아니라 동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에서 전 세계 지식인들이 반전 운동에 동참했다. 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공산주의에서 사회주의 개혁, 자유주의, 반공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모델로 한 민사재판소를 열어 베트남에서 벌어진 미국의 대량학살을 고발하고 기소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행한 잔혹 행위와 프랑스 식민주의가 알제리 국민에 가한 무자비한 폭력을 대조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미국의 검사인 텔포드 테일러는 뉘른베르크와 베트남을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국의 비극.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유대인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미군이 자행한 인종 차별적 학살에서 비롯된 홀로코스트를 떠올렸다.

정치적 관점에서 68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을지 모르지만, 세계 메모리 공간을 지배하는 메모리 코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계기로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 폭력에 대한 기억이 글로벌 기억 공간에 결합되면서 반인륜 폭력을 인정하는 감수성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세계화됐다.

베트남 전쟁은 난징 대학살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베트남 반전운동은 아태전쟁 당시 일본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냉전 체제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억압해야 했던 것처럼 동아시아의 기억 공간에서도 냉전의 구속력은 강력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반공운동의 결속을 위해 식민주의의 기억을 지워야 한다는 냉전 논리가 지배적이었지만 일본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잠글 수는 없었다.

그 물웅덩이는 일본에서 먼저 발생했다. 혼다 가쓰이치 아사히신문 베트남 특파원이 베트남에서 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주로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문득 '아태지역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행태는 어땠고, 과연 오늘날 베트남에서 미군이 저지른 만행과는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의 길을 따라 보고서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쓰이치는 일본군의 행로를 따라 중국을 탐험하면서 일본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증언을 기록했다.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양심적 기억을 일깨운 것은 그의 중국 여행 보고서였다. 그러나 그의 보도는 '난징 사건'이라는 미명 아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우익은 난징 대학살이 코민테른 장교들로 무장한 좌파가 일본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선전술의 일환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공문서에 증명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살이 있었다고 해도 조직적인 학살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에 수반될 부수적인 피해였다. 군이 의도한 조직범죄라기보다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부수적 폭력이었다. 그들은 또한 난징 대학살이 태평천국의 난이나 반동적인 중국 군벌들에 의한 학살에 비하면 새로운 피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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